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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삶의 주인공 '덕혜옹주'
조금제/독도지킴이 대한민국 대마도본부 본부장

대마도를 여행하면 한국전망대, 조선통신사 기념비, 수선사와 함께 덕혜옹주 결혼봉축비를 빠짐없이 방문한다.

초등학교 구석 한편에 자리잡은 기념비는 주위에 풀이 무성하여 그녀가 비극적인 역사의 삶을 살다간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 조선 제26대 고종과 후궁인 복녕당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고종이 회갑연에 얻게된 딸로 여섯 살 때인 1917년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하였다

1919년 일제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을 했지만 1925년 4월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1931년 5월 쓰시마섬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다케유키(종무지)와 강제 결혼해 딸 마사에(정혜)를 낳았다.그러나 결혼 후에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이후 계속 병상생활을 하다가 1953년 다케유키와 이혼하였다.

하나 있는 딸마저도 결혼에 실패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고, 1962년 1월 26일 귀국할 때까지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비극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않아 귀국 20년 만인 1982년이 되어서야 호적이 만들어졌고, 결국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에 묻혔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덕혜옹주!!

당시 정신병은 신체 장애와 함께 상당히 부끄러운 질병 가운데 하나였고, 특히 귀족인 덕혜옹주의 정신병은 당시에는 상당한 가쉽 거리였었다. 종무지는 이를 꺼려해서 덕혜옹주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할 생각을 못하고 집안에 가둬두는 것으로 대신하였고, 옹주가 자꾸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밖을 나가려고 하자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고도 한다.

태어나자 마자 옹주의 정신병 재발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옹주의 딸 정혜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정혜의 죽음에 대해서도 어머니의 결혼생활 못지 않게 말이 많다.

정혜는 광복후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인과 결혼하게 되는 데 연애 결혼이었음에도 이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얼마 후 가출을 하여 자살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광복 후 1962년에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귀국하고 나서는 한번 보고싶다고 찾아 왔던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옹주의 충격을 염려한 측근에 의해 거부 당했다고 한다. 덕혜옹주는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 소설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살다 간 것이며, 대마도에서 그 아픔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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