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성 시인

겨울, 발굴 현장

발굴하는 붓끝이 가늘게 떨린다

뾰족한 지붕 첨탑과

검게 탄 나무가 나타난다

숨은 골목길을 파내고

기어이 아치형 돌다리를 찾아낸다

회색 지붕 위로 나뭇잎이 진다

돌다리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붓끝에 푸른 강물이 뚝뚝 떨어진다

대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온다

커튼이 살짝 흔들리고 웃음소리가 들린다

외투를올린 걸음들이 바쁘다

종일 붓으로 캔버스를 파고 있다

파헤쳐진 현장에 흰 물감을 뿌린다

함박눈이 내린다

사람도 웃음소리도 점점 사라지고

찍힌 강아지 발자국만 남는다

온 세상이 희다

화가의 붓끝이 온통 하얗다

경남뉴스투데이  webmaster@knnewstoday.co.kr

<저작권자 © 경남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