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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매기의 추억
양재성(시인)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여우도 죽을 때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에 대한 귀소본능을 일컫는 말이다. 바다에서 성장한 연어가 그물을 피하고 폭포를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강줄기를 찾아가 알을 낳고 수명을 다한다는 모천회귀(母川-回歸)도 같은 뜻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노래하였고 다양한 예술로 표현한 작품들은 부지기수다.

고향은 추억이 살아있는 곳이요, 마음의 안식처이며, 자신의 뿌리다. 그러나 팍팍한 현실을 살다보면 잊고 살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생활에 쫒기다 문득 돌아보는 고향은 저만치 멀리 있을 때도 있다. 삶이 고단해지거나 명절이면 떠오르는 고향은 아픈 기억 혹은 아련한 감성이 묻어나는 곳이다.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가하면 실향민처럼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둔 사람도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은 세월이 흐를수록 간절하게 그립다.

얼마 전 청마를 기리는 문학행사의 일환으로 북만주조선족 학생백일장 행사 차 하얼빈을 다녀왔다. 중국에 살면서 한글로 써 낸 학생들의 작품들을 보며 우리글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그들에게 왠지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들었다. 백일장을 마치고 청년시절 청마의 자취를 찾아 걸음을 옮기며 감회에 젖을 때, 무슨 연유인지 연변에서 요절한 윤동주 시인의 흑백사진 속 모습이 떠오르곤 하였다. 마지막 날 슬슬 지치기 시작할 무렵 들른 곳이 하얼빈의 정률성 기념관이다.

정률성은 1918년 8월 13일 한국 광주에서 출생하여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남경, 상해 등지를 전전하면서 작곡과 성악을 배웠다. 1937년 연안 로신예술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으며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 <연안송>,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군가> 등을 작곡하는 등 중국에서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연변방송국에서는 정률성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그의 일대기를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한국의 광주 남구청은 정률성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정률성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광주시 양림동 거리에 정률성로를 지정하고 거리기념관을 조성하는 등 기념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단다.

그의 연보와 경력은 그렇다 치고, 기념관 내부를 돌아보는데 어디선가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소리 들린다 매기 아 희미한 옛 생각 동산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만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소리 그쳤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하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중국어로 가득 찬 전시공간에서 들려오는 가곡조의 한국 노래는 놀라움이었다. 온화하고 풍부한 성량에 삶의 관조가 묻어나는 슬픈 목소리의 노래였다.

중국 고위층 집안의 아내와 결혼하고 장성한 자녀들 앞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 정률성이 고향을 그리면서 한국말로 불렀던 유일한 노래로, 딸이 녹음을 해두었던 것을 들려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교육받고 주입된 이데올로기의 심벽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에 잠긴다. 어릴 때 출향하여 중국에서 청춘을 보냈고 인민영웅으로 추앙까지 받게 되었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고국과 고향이 되어버린 백발노인의 향수에 젖은 눈빛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목이 메었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한동안 마음이 아렸다.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을 북만에서 고뇌하다 고국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과 함께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기시고, 고향 거제도 둔덕골의 양지바른 언덕에 잠들어 계신 청마 선생님과 대비되면서 다양한 상념들이 꼬리를 문다. 북만주에 다녀온 지 달포가 지났음에도 이따금씩 흥얼거려진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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