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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문예단상
양재성 시인

우리는 흔히 문화와 예술을 한데 묶어서‘문화예술’로 쓰기도 한다. 사전적으로 문화는 인간이 이루어낸 역사의 산물로서 정치나 경제, 법과 제도, 문학과 예술, 도덕, 종교, 풍속 등 모든 사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예술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하는 작품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예술을 포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오래전부터 문화와 예술의 경제성을 두고 논의가 있어왔다. 특히, 예술의 경우 전통적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생산가치와 교환가치 및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들어 객관적인 가치와 가격으로 경제성이 결정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주관적인 가치와 객관적인 가격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 활동을 일반적 재화처럼 단순히 자본에 노동력과 시간, 수요와 공급, 효용가치 등을 기초로 경제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혹자는 예술분야의 투자를 기반시설이나 공공시설물 등에 대한 투자와 비교하면서 즉시효과와 경제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세계 각국이 교육에 쏟는 노력과 투자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교육을 위한 천문학적 투자의 효과는 학생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지니고- 장차 사회의 중심적인 구성원으로 성장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이는 오랜 시일이 걸릴 뿐만 아니라 서서히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사회전반을 아우르는 문화와 역사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므로.

예술도 그러하다. 예컨대 이중섭이 담뱃갑에 낙서처럼 끄적인 그림의 가치를 그 당시나 혹은 현재의 관점에서 어떻게 계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핍박받던 민족에게 한 편의 시(詩)가 민족혼을 일깨우고 그들의 삶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어떻게 경제성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유사한 실례는 부지기수다. 수일 전 세계적 문화재이면서 예술품이기도 한 노트르담 사원이 불탔다. 현대기술로 완벽하게 복원을 한다고 쳐도 예전의 고유한 가치를 되살릴 수는 없다.

예술작품을 당장의 계량적인 관객의 수치나 수익성을 기준으로 그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전시분야나 공연분야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또한, 지명도나 인지도, 중앙이나 지방을 놓고 비교하거나 홀대해서도 안 된다. 지역예술은 지역특수성을 바탕으로 독자성과 예술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예술작품에 시간이 덧씌워지면서 특유의 문화가 형성되고 이는 장차 관광산업의 화수분이 될 수 있다. 결국 예술의 평가는 목전의 경제성이 아니라 내재적 고유한 가치와 미래의 공익성에서 찾는 것이 더 의미가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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