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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대첩<獨島大捷> 정신을 이어받아 전 국민이 독도지킴이가 되자!
조금제/독도지킴이 대한민국 대마도본부 본부장

1954년 11월 21일 먼동이 틀 무렵, 홍순칠(洪淳七·1929~1986) 독도의용수비대장은 늘 그랬듯이 섬을 순찰하다 전방 1㎞ 앞 해상에 있는 일본 함정 3척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쳐다 본 하늘에는 일본군 비행기도 있었습니다. 그는 황급히 막사 안으로 뛰어들며 큰소리로 ‘비상!’을 외쳤고 대원들은 기민한 동작으로 전투태세를 갖췄습니다.


7개월 전이었던 4월 20일 33명의 독도수비대원이 독도에 상륙한 이래 몇 차례 일본 함정의 침범이 있었지만 3척의 함정에 비행기까지 동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긴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홍순칠 대장은 ‘훈련한 대로 행동하자’고 대원들을 독려했습니다. “함정이 500m까지 접근했을 때 권총으로 신호한다. 박격포는 먼저 PS 9함을 때리고 중화기는 지휘탑을 파괴한다. 좌우쪽 10, 16함을 같은 요령으로 공격한다” 그리해 마침내 접근해오는 일본 함정을 향해 집중사격이 가해졌고, 특무상사 출신 서기종 대원이 쏜 박격포 제1탄이 PS 9함에 명중했습니다.필사의 각오로 쏜 우리 독도의용수비대의 일격에 일본 함정들은 모두 동쪽으로 도망쳤고, 독도 상공을 몇 차례 선회하던 비행기도 이내 사라졌습니다. 그제야 대원들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서로를 부둥켜안았습니다.


이날 저녁 NHK 라디오 방송은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들이 한국경비대에 의해 피해를 입고 16명이 크게 다쳤다”고 보도했지만 사실 그날 우리의 용사들은 모두 민간인들이었습니다. 전쟁 직후라 우리 정부가 독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라도 힘을 모아 소중한 국토를 지키자’는 일념으로 그들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보상도 대가도 바라지 않았고, 보잘것없는 무기를 들고 일본 함정에 용감하게 맞섰던 것입니다.86년 유명을 달리한 홍순칠 대장은 생전에 쓴 자서전을 통해 전투에 임했던 당시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임란 때 이순신 장군은 열세(劣勢)한 전력으로 일본을 대적해 싸우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는 그에 비하면 오히려 유리하다 할 만하지 않은가?”
54년 11월 21일 독도에서 있었던 작은 전투, 많은 신문은 이를 가리켜 ‘독도대첩’(獨島大捷)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끝난 소규모의 전투를 ‘대첩’이라 말하는 이유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발생한 전투가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주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임무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영토 침탈의 야욕을 멈추지않고 있다. 홍순칠 대장과 독도의용수비대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 국민이 독도지킴이가 되어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수호해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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