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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진실은 무엇인가?!
▲ 조금제독도지킴이 대한민국 대마도본부 본부장

우리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전국민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독도를 자가네 땅이라고 우긴다.고종황제는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칙령 제41호를 제정 반포하여 독도를 울릉도 부속섬으로 명시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일부 독도단체들은 10월 25일을 "독도칙령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한다.

필자도 2015년 10월 25일 덕수궁에서 독도NGO포럼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석하여 독도칙령 제정경위와 목적에 대해 직접 낭독을 하였다.그들의 주장을 잠시 요약해보자.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일본 땅으로 편입하고 2005년 2월22일을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을 지정하여 매년 행사를 하고 있다.이에 우리는 2008년에 국회에서 독도의 날을 지정하자는 주장이 있어 일본보다 3년이 늦다는 주장이다.

이번 기회에 독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진실에 대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바란다.
그럼 "동북아역사재단"이 정리한 "일본이 모르는 독도에 대한 진실 열 가지"를 열거해보자!

첫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예부터 전해지는 각종 지도와 문헌을 통해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독도의 진실은 이렇다.일본 정부의 근거는 1846년 판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 그러나 이보다 앞선 1779년 초판을 비롯한 정식 판본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경위도선 밖에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1821년에 나온 대일본연해여지전도를 비롯한 일본의 고지도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1876년 일본 육군 참모국이 발행한 조선전도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에 포함시켰습니다.

두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독도는 맑은 날이면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고, 이러한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독도는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두 섬이 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떄에는 우산국이라 칭했는데, 울릉도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사실과 우산도가 우산국의 소속이었음을 밝혀놓았습니다. 우산도가 독도라는 기록은 1531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1770년 동국문헌비고, 1808년 만기요람, 1908년 증보문헌비고 등 많은 관찬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팔도총도에는 동해에 울릉도와 우산도 두개의 섬이 그려져있다. 18세기 이후의 지도는 모두 우산도를 울릉도 동쪽에 그리는 등 위치와 형태도 명확해진다.

세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일본은 17세기 중엽에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한다.
독도의 진실은 이렇다,일본은 에도시대 초기인 1618년, 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해(渡海)면허를 받아 울릉도에서 어업을 했으며 울릉도에 가는 길목에 있던 독도를 자연스럽게 이용했으므로 늦어도 17세기 중엽 독도 영유권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도해면허는 자국의 영토인 섬으로 도해할 시 필요하지 않은 문서이므로 이 주장은 오히려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네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일본은 17세기 말 울릉도 도해를 금지했지만 독도의 도해는 금지하지 않았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울릉도를 도해했던 일본 가문의 문서에서 ‘죽도(울릉도)근변의 송도(독도), 죽도(울릉도) 내의 송도(독도)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옛 일본인들도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앞서 일본의 주장처럼 일본은 울릉도로 건너갈 때 독도를 이용했었고 독도만을 목적으로 도해하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리면서 독도 도해 금지령을 별도로 내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1696년 울룽도 도해 금지 조치에는 당연히 독도 도해 금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섯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인용하는 안용복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안용복의 도일 활동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는 울릉도의 소속에 관해 논의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에도막부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습니다. 안용복의 활동 내용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기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진술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안용복의 2차 도일(渡日) 시 활동을 기록한 일본 문서. 안용복이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주장을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여섯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1905년 시마네 현의 독도편입은 영유의사의 재확인이었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 중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라는 ‘무주지 선점론’을 내세우며 독도를 침탈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이 주장을 ‘영유의사 재확인’으로 바꿨습니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과 ‘무주지 선점론’을 근거로 독도를 편입했다는 주장이 모순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유의사 재확인’이라는 주장은 1877년 태정관 지령 등 독도가 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해 온 일본 정부의 견해와 배치되는 것입니다.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은 국제법상 무효이며 우리나라는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이를 근대법적으로 재확인하였습니다.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대한제국은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했으며 울도 군수의 관할지역으로 ‘울릉전도, 죽도, 석도’로 규정했다.이 칙령은 1900년 10월 27일자 관보에 게재됐다.

일곱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시 미국은 일본이 포기해야 할 지역에 독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
연합국총사령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시까지 독도를 일본에서 분리하여 취급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약탈한 영토를 포기할 것을 명시한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의해 확립된 연합국의 전후 처리정책에 따른 것이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의 연장선으로 진행된 것이므로 일본에서 분리되는 한국 영토에 당연히 독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또한 일본이 근거로 내세우는 ‘러스크 서한’은 연합국이 아닌 미국만의 의견으로 독도영유권을 결정하는 어떤 효력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덟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1952년 미일행정협정합동위원회는 주일미군이 독도를 폭격훈련구역의 하나로 지정했다. 이는 일본의 독도영유권을 인정했단 증거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일본 정부는 한국 어민들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독도를 미군의 폭격훈련구역으로 지정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1952년 한국 정부가 이에 항의하자 미 공군은 즉시 독도를 폭격훈련구역에서 제외했으며 미 대사관은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통고했습니다.1948년 6월 미군의 독도 폭격으로 우리 어민들이 희생되었다. 미국 극동항공대 사령부는 ‘우발적인 사건’이라 설명하고 향후 독도에 대한 폭격 연습 일체를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1950년 6월 독도 현지에서 경상북도 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희생된 어민들을 위한 위령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아홉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한국은 국제법상 아무 근거없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1905년 일본은 시네마 고시로 독도를 침탈했고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가 불법적으로 한국을 통치했습니다. 하지만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되찾았습니다. 한국은 1948년 8월 정부수립 직후 독도에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리 1번지’주소를 부여하고 주권을 행사했으며 연합국과 일본인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독도에는 대한민국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정부는 독도를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법적인 정당성을 토대로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열번째 일본의 주장으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했지만 한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독도의 진실은 이렇다.
독도는 역사,지리,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대한민국은 독도에 대해 입법, 행정, 사법적으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도는 외교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독도 영토분쟁에 있어 세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먼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두번째는  역사를 왜곡한다.세번째는 불리하면 침묵으로 일관한다. 억지로 주장하다가 안되면 역사를 왜곡하고 불리하면 침묵하는 자들에겐 역사의 진실로 대처해야한다.
일본의 독도에 대해 역사왜곡에 대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일관성있는 대처를 하여야 할 것이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가 있다.이 노래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87K(중략) 독도는 영원한 우리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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