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성시인

무너진 담장 겨드랑이에 핀 장미꽃들은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에 따라 색상을 조절하며

산소와 질소의 포화도에 맞게 측정된

농도의 향기로 화장대를 유혹하고

느닷없이 야심한 산중에 길 잃은 여인의 비명처럼

때로는 상여 막에서 들려오는 아이 울음소리에

야윈 마음으로 가위눌림의 새벽을 쓸어 담는데

저만치 선 금목서가 바람에 살짝 허리를 흔들자

귀국길에 들린 면세점의 향수도

택시에 매달린 값싼 향기도 아닌

야릇한 페로몬 향기인 듯하여 기억조차 희미한

원소기호와 분자식을 퍼즐처럼 조립할 무렵

공중에 매달려 왕복하는 진폭만큼의

지친 시간을 뱉던 낡은 벽시계가

수제비 끓여놓고 부르는 어머니처럼

어느덧 달아오른 정오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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