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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음지의 역사를 이겨내고 가장 밝은 곳이 된 진해구 경화동
진해루에서 바라본 진해 앞바다<사진제공=창원시>

(창원=경남뉴스투데이) 기계공업의 메카로 불렸던 창원시가 새로운 미래 먹거리 마련에 전력을 쏟고 있다. 창원국가산단을 중심으로 구조고도화를 통한 제조업의 첨단산업화와 함께 공업도시라는 명성에 상대적으로 잊혀졌던 문화, 관광자원을 통해 관광도시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이와 연계해 ‘창원 58열전’이라는 가제로 관내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기획을 연재한다. 찾아간 곳은 ‘음지의 역사를 이겨내고 가장 밝은 곳이 된 진해구 경화동’이다.

□ 경화동은 ‘빼앗긴 자의 도시’ 였다

진해는 1910년대 일제가 건설한 군항도시다. 애초 일제는 마산 외곽지역 ‘진해현’에 속하던 진동·진전·진북 일대에 군항 배후도시를 계획했다가 장복산 자락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름도 ‘진해’를 가져왔다. 진해는 일본인의 설계로 일본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일제의 야욕이 계획대로 진행되면서 장복산 자락에 터를 잡았던 11개 마을 2,000여명의 원주민들은 강제토지매수 방식으로 시 외곽으로 내쫓겼다. 이들이 강제로 이주하게 된 곳이 지금의 진해구 경화동이다. 당시 경화동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황무지에 가까웠다. 이곳에 일제는 감시가 쉽고 군항건설에 인원동원을 위해 바둑판같은 형태의 주거단지를 만들어 한국인들만 살게 했다. 어느 언론의 표현대로 중원로터리 일원은 ‘빼앗은 자의 도시’, 경화동 일원은 ‘빼앗긴 자의 도시’가 되었다.

겨울 문턱의 경화역<사진제공=창원시>

□ 치열한 삶터이자 진해 근현대사의 산실이 되다

일제에 의해 강제이주지가 된 경화동은 치열한 삶터이자 진해 근현대사의 산실이 되어갔다. 조선시대 말까지 진해에서 가장 큰 장터였던 풍호동의 풍덕개장이 경화동으로 터를 옮겨 경화시장이 열렸다. 일제가 풍덕개장 자리에 비행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화시장은 1924년에 공설 1호 시장으로 분류되었고, 1955년에 시장 승인을 받았다. 경화시장은 한국인들만의 거주지에 있었던 장이었고 시대상황도 그렇다 보니 그곳에서 오간 얘기는 미뤄 짐작된다. 그때부터 였을까? 평소 조용했던 경화시장 거리에 장이 서는 날이면 온 진해가 떠들썩하다.

현재 매월 3·8일, 13·18일, 23·28일에 정기적으로 개장되는 경화시장에서는 진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에서부터 채소, 과일 등 육해공에서 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봄날의 경화시장의 벚꽃내음은 덤이다.

진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도 경화동에 있다. 1912년에 개교한 경화초등학교는 사립 대정학교로 출발해 1920년 진해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45년 경화국민학교, 1996년 경화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꿔오며 지역인재의 산실로 자리매김 해왔다. 2012년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역사관도 개관했다.

벚꽃터널로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화역이 등장한 것은 1926년이다. 경화역은 진해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진해선은 일제 강점기에 해군 기지의 유지와 진해항의 연결을 위해 마산~진해 간에 연결된 철도다. 경화역은 창원방면의 성주사역과 진해역, 통해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오다 1987년에 지역 주민 등이 역에 근무하며 승차권을 발매하는 을종 승차권 대매소로 격하되었고, 2000년 역사 철거, 2006년 해군 통근 열차 폐지로 역 기능을 상실했다.

경화역이 여객운행을 하지 않으면서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역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진해군항제가 열리는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루는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800m 길이의 벚꽃터널에 서 있는 기차 풍광에다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꽃잎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경화역은 2012년에 여좌천 벚꽃길과 함께 CNN이 선정한 한국의 관광명소 50곳 중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겨울 문턱에 찾아간 경화역은 어색함이 앞섰다. 벚꽃은 내년 봄을 기약하며 동면에 들었다. 벚꽃이 잠든 사이 한쪽에서는 경화역공원 조성이 한창이었다. 기차실물을 가져다 기차역사박물관으로 만들고, 미니어처이기는 하지만 경화역사도 들어서고 있었다. 새로 들어선 공중화장실과 버스승강장도 기차모형을 했다. 공원을 둘러보자니 내년 봄 이곳을 가득매울 사람들 모습이 눈에 선했다.

겨울 문턱의 경화역 <사진제공=창원시>

□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진해의 대표적인 주전부리인 진해콩 생산지가 경화동이다. 진해콩은 1915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해 100년을 훌쩍 넘었다. 첫 생산은 일본인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진해콩을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38년으로 현재 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진해콩은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해 콩모양으로 만든 뒤 기름에 튀기지 않고 직접 불에 굽기 때문에 유해지방 걱정이 없다고 알려지면서 현재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1960, 1970년대에는 최고급 과자로 명성을 날렸고, 진해콩 인기가 높아지자 마산, 부산 등지에서 경쟁업체들이 성업하기도 했다. 지금도 진해콩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경화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생산공장을 직접 찾기도 한다.

옛 진해시는 근대 역사와 함께 경화동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속천 해안도로변에 해변공원을 조성했다. 해군교육기지사령부의 경내로 관리되어 오던 곳에 교통 소산과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할 수 있게 해군의 협조를 받아 정지, 매립 등을 거쳐 공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새로운 랜드마크 건물로 진해루를 지었다.

진해루는 연면적 477㎥에 높이 15.2m, 주심삼포양식의 팔각지붕으로 2005년 8월에 착공해 2006년 4월에 준공됐다. 명칭은 공사착공과 함께 일반시민들에게 누각명칭 공모를 통해 결정지었다. 진해루는 아름다운 진해만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권과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인기가 높고, 진해지역의 해맞이와 해돋이 명소로도 자리를 잡았다. 이와 함께 총 30km에 이르는 ‘진해바다 70리 길’ 7개 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경화역 한켠엔 주민들이 함께 만든 덕주동산도 눈에 들어온다. 덕주동산은 지난 2011년 경화동으뜸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에서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경화동 조천마을에서 출생한 김덕주 이인(異人)을 기려 지역주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고자 이야기가 있는 테마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2017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시설물을 보강해 재개장 했다.

김덕주 이인은 일제강점기 실존인물로 축지법은 물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지역민들이 그를 이인이라고 불렀다 한다. 경화동엔 해발 602m의 장복산 덕주봉의 유래와 덕주바위, 텃밭, 샘터, 쉼터 등 이인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아가 경화동으뜸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는 지난 2013년 이인의 전설을 담은 ‘덕주 할아버지와 꽃순이’ 동화책 500권을 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벚꽃이 흐드러진 경화역만을 떠올렸던 경화동은 벚꽃 뒤에 가려진 음지의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아픈 역사를 씩씩하게 이겨내고 이내 가장 밝은 곳으로 올라섰다. 경화동의 진정한 얼굴을 마주하니 왜 그토록 진해주민들이 경화동을 애지중지하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김선연 기자  webmaster@kn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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