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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지명 변천사를 알아보자!
조금제/독도지킴이 대한민국 대마도본부 본부장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세월에 따라 독도 지명이 달라져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산도를 시작으로 시대별 독도의 지명 변천사를 알아보자!

< 우산도(于山島) 512년>
우산도(于山島)는 가장 오래동안 독도를 부르던 명칭이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이사부가 우산국(于山國)을 복속시킴으로써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나오는 ‘우산국’은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 섬의 이름이 혼란되어 사용되었으나, 점차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되면서 ‘우산’이라는 명칭은 독도를 가리키게 되었다. 간혹 ‘우(于)’의 표기를 잘못 읽어서 ‘천(千)’, ‘간(干)’, ‘자(子)’ 등으로 표기된 사례도 있지만 ‘우(于)’가 정확한 표기이다.

< 삼봉도 (三峰島) 1471년>
조선시대에는 독도는 우산도(于山島)외에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삼봉도(三峰島)라는 명칭은 <성종실록>(1476년)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독도의 형상을 세 개의 봉우리로 기술하면서 사용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 가지도 (可支島) 1794년>
가지도(可支島)는 1794년(정조 18년)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의 울릉도 보고서에 “갑인년 4월 26일에 가지도(可支島)에 가보니 가지어(可支漁)가 놀라 뛰어나왔다”는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지어’는 강치(Zalophus Californianus)의 우리말인 ‘가제’를 음역하여 부른 것으로, ‘가지도’란 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란 뜻이다.

< 석도 (石島) 1900년>
석도(石島)는 대한제국 1900년(고종 37년) 10월, 대한제국 칙령 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부르고 군수를 파견하며 울릉 전도(全島),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규정하면서 등장하였다. 여기서 울릉 전도는 울릉도를, 죽도는 울릉도 동쪽에 접해 있는 작은 섬 죽도를, 석도는 독도를 가리킨다.

< 독도 (獨島) 1906년>
석도(石島)라는 한자를 한글로 표현하면 ‘돌섬’이 되고, ‘돌’을 지방 방언으로 ‘독’이라고 발음하여 울릉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돌로 된 섬이라는 ‘돌섬’, 즉 ‘독섬’이라 불렸다. 이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현재의 ‘독도(獨島)’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1906년 3월에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에 ‘본군(울도군) 소속의 독도’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명치(明治)시대 이전에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라 부르다가, 1905년 영토편입 이후부터는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섬을 발견한 선박의 명칭을 따라 이름을 붙였는데,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꾸르호는 ‘리앙꾸르 암(Liancourt Rock)’으로 명명하였고, 1885년 영국함선 호네트호 또한 ‘호네트 암(Hornet Rock)’으로 명명하였다.

상기에서  열거했듯이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산국을 복속하면서 부터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로 자라매김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없는 주장을 즉각 중단하기를 바란다. 동해의 끝자락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독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고유영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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