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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문우답(賢問遇答)
양재성 시인

종강을 며칠 앞둔 강의실에서의 일이다. 어느 학생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져왔다. 딱딱한 강의시간을 회피해보려는 저의를 알면서도 현재 정치권의 시끄러운 문제이기도 해서 피식 웃으며 응수를 하였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강의시간에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이 또한 후일 역사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문제라는 말로써 시비나 찬반의 본질을 회피하였다. 대신에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라는 테마로 슬쩍 얘기를 돌렸다.

역사는 반복되는 속성이 있고 이를 통하여 교훈을 얻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어느 민족이나 사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사한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와 일본을 보더라도 신라시대부터 왜구의 노략질, 고려 때의 왜구침입, 조선시대의 삼포왜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비롯, 구한말의 일제 침략과 경술국치, 이후 35년간의 일제 강점기, 광복 이후에도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왜곡, 과거사 책임부인, 독도망언 등은 반복되는 역사의 일면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처럼 궁극적으로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마무리를 하였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시험이란 제도는 왜 있는가’ 라는 시답잖은 논제를 끄집어냈다. 기왕 내친김에 잡담으로 계속 놀자는 뜻이다. 기말시험도 치룬 터라 모르는 척 동조키로 했다. 시험제도를 두고 중구난방에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나 역시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역사와 관련지어 언급하였다.

학생의 학업성적을 기록한 것이 학적부이며 개인의 지난 행적과 경력을 기록한 것이 이력서이다. 이는 개인의 역사자료로서 장차 미래를 예측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지표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사회와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미래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역사의 반복성에 기초한 아전인수식의 설명이었다.

또한, 입장을 바꾸어 여러분이 기업이나 국가의 경영자 입장이라면 어떠한 자료와 근거로 적절한 사람을 선발할 것인가 하고 되물었다. 사람을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성적과 이력서 등을 객관적인 판단자료로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현재를 성실하게 관리해 온 사람l이 미래에도 충실할 것이라는 기대가능성을 토대대로 선발하지 않겠느냐고 답하였다.

단순히 신언서판(身言書判)이나 사주 관상만으로 사람을 뽑을 수는 없으므로, 최소한의 객관적 참고자료 중의 하나가 시험제도이고. 따라서 남보다 좋은 기록을 쌓기 위한 경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기말시험이 끝나고 학점처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번쯤 시험이 없는 세상을 꿈꾼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고 가혹한 시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은 각종 시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부모들은 뒷바라지에 허리가 휜지 오래다. 어렵게 대학을 나와도 취업시험, 임용시험, 어학시험, 유학시험, 자격시험 등 넘어야 할 장벽들이 태산처럼 버티고 있다. 이 장벽을 넘기 위한 노력과 경쟁은 또한 얼마나 가혹하고 치열한가. 그러다보니 취업절벽으로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캥거루족, 부모의 노후까지 거덜 내는 빨대족도 늘어만 간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시험이나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공정성, 형평성이다. 최근에는 부모의 능력이 자녀에게 세습된다는 의미로 ‘금수저 흙수저’라는 자조적인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학생들이 ‘과연 우리사회에서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하고 물어온다면, “당연히 그렇다” 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연일 터져 나오는 사회지도층 자녀들의 입학비리, 성적비리, 취업비리, 병역비리도 모자라 자신들의 추악한 비리까지 끝이 없다. 기성세대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어둡고 힘들다고 다들 난리다. 특히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앞날이 더욱 염려스럽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충실하게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라는 원칙적인 얘기밖에 해 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시험과 취업전쟁에 지친 학생들의 질문에 장차 이렇게 말하는 날이 왔으면 싶다.

“세상은 투명하고 공정하다. 고로 자신의 역사에 충실하라”

머지않아 그런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과 기대 속에 아침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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