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에르메스(Hermes) 로션을 이 후보의 욕실에 비치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에르메스(Hermes) 로션을 이 후보의 욕실에 비치하는 일이다.
[ ..... 에르메스 .... 가장 비싼 군에 속하는 것 .....
판매 가격은 98,000원 ....... ]
'새것 비치했습니다'… 비서가 李 욕실에 에르메스 로션까지
2022-02-04 이주희 인턴기자
“로션 교체해놓고 남은 건 합체시켜.”
“새 것은 지사님 욕실에 배치했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뒀습니다.”
공개된 내용 중 온라인상에서 가장 화제가 된 심부름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Hermes) 로션을 이 후보의 욕실에 비치하는 일이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배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A씨에게 ‘○○○에게 로션 받아서 교체해 놓고 남은 거 두 개 합체 시켜’라고 지시했다. 이에 A씨는 ‘○비서에게 받아서 새것은 지사님 욕실에 비치하였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두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대화와 함께 해당 제품의 사진이 등장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 지사가 사용한 제품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으로 남성들이 면도 후 피부 진정을 위해 바르는 로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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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담은 국내외 온 ·오프라인서 판매되는 애프터 셰이빙 제품 중 가장 비싼 군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에르메스, 100ml)의 공식 홈페이지 판매 가격은 98,000원이다. 디올 맨즈(100ml)와 샤넬 맨즈(90ml) 제품은 7만원대이다.
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2620EB3AJO
명품 최상 등급 에르메스… 상위등급에 ‘김혜경’이 사랑한 ‘고야드’도
강민 기자 2021. 11.30
판매 데이터 등 기반 명품 계급도 선정, 상위등급 '샤루고'
박경훈, “연말 세일 시즌 명품 브랜드 가이드 목적”
트렌비가 발표한 명품 계급도(좌), 트렌비가 발표한 명품 계급도 상위에 랭크된 고야드 가방을 든 김혜경 씨. 더불어민주당은 이 자료 발표 당시 상위 클래스의 고야드 가방이 노출 되지 않도록 큰 글씨로 배우자 김혜경씨라는 큰 글씨를 써 넣었다. 이 사진 외에도 다수의 사진에서 김혜경 씨는 다양한 고야드 가방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렌비, 더불어민주당 인스타그램
[시사포커스 강민 기자] 트렌비가 명품 계급도를 발표했다. 지난 8월부터 지난달까지 판매데이터를 기반으로 최대 매출액과 검색량을 기록한 브랜드 중심으로 분석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 부인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야드도 상위에 랭크됐다.
30일 트렌비는 올해 명품계급도를 선정해 발표했다. 최상위 등급은 에르메스, 그다음 등급에는 오픈런 유발 브랜드 샤넬과 국민 명품 루이뷔통, 이재명 대선 후보 덕분에 더 유명해진 고야드가 랭크 됐다. 총 7개 단계로 등급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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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엑스트라 하이엔드 레벨에는 에르메스가 랭크됐다. 매월 트렌비 사이트 브랜드 내 검생량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이엔드 레벨에는 샤넬, 루이비통, 고야드로 구성됐다. 모두 100년 이상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고 이 브랜드들은 폭증 수요와 잦은 가격변동으로 오프라인 명품 소비채널인 백화점 오픈런 현상을 만들어낸다. 샤넬은 분석기간 동안 최다 누적판매순위 4위 루이비통은 5위를 기록했다.
프레스티지에는 디올, 펜디, 보테가베네타, 셀린느가 이름을 올렸다. 프리미엄 레벨에는 프라다, 구찌 생로랑, 버버리, 로에베가 선정됐다. 프리미엄 레벨은 모두 브랜드 특유 감성을 돋보이는 소재와 로고 플레이에 집중하는 특징이 있다고 트렌비는 설명했다. 구찌는 작년 1월 부터 현재까지 매출액 및 주문 건수 기준 브랜드 순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라고.
올드코어에는 발렌티노, 끌로에, 미우미우가, 영코어에는 컨템포러리 브랜드인 발렌시아가, 르메르, 메종마르지엘라, 톰브라운 등이 선정됐다.
데일리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 에브리데이 레벨에는 코치, 토리버치, 마이클코어스 등이 랭크 됐다.
http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113
[ 노무현 --- 피아제 ]
[ ....... 노 전 대통령의 회갑 선물 명목으로 개당 1억 원짜리 시계 2개를 선물했다고 박연차 회장이 진술 ......... ]
[ ...... 노 전 대통령은 이제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
[이 시각 현장] 회갑 선물로 억대 시계
2009.04.22
앵커 멘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또 한번 큰 상처가 났습니다.
억대의 시계 두개를 박연차 회장에게서 선물로 받은게 드러났습니다.
오늘 검찰의 서면질의서 발송으로 검찰과 노 전 대통령간의 대결이 본격화됐습니다. 대검 연결합니다.
질문
조태흠 기자 검찰이 서면 질의서를 보낸 이유가 뭔가요
답변
예,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소환했을 때 조사할 양이 많다며 소환에 앞서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실제 소환조사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기본적인 사항과 쟁점 부분을 정리한 질의서를 보냈다는 겁니다.
A4 용지 7장 분량의 질의서에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질문 수십 개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문재인 전 비서실장에게 주말까지 답변서를 보내라고 통보했습니다.
검찰은 답변서가 도착하면 2-3일 동안 검토를 거친 뒤 곧바로 소환일정을 잡을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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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연차회장에게서 받은 억대의 시계가 회갑선물이었다고요
답변
예, 지난 2006년 9월쯤 노 전 대통령의 회갑 선물 명목으로 개당 1억 원짜리 시계 2개를 선물했다고 박연차 회장이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대근 당시 농협 회장이 회갑 선물이라며 3만 달러를 건넨 시기와 일치합니다.
박 회장은 시계 선물 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박 회장이 해마다 수억 원어치의 명품 시계를 사들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박 회장이 고가의 시계로도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드러난 겁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관련 조사를 벌인 뒤 이와 관련한 뇌물 혐의를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문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서 나를 버려달라고 했다는 데 무슨 얘깁니까
답변
노 전 대통령은 이제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며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도덕적 신뢰가 바닥났다고도 했습니다.
이어서 정상문 전 비서관이 자신을 위해 일하다 구속된 만큼 국민께 사죄할 일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앞으론 사건 관련 글을 올리지 않을 것이며 말할 공간은 사법절차만 남은 것 같다고 해, 법적 대응에 전념할 것임을 내비쳤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은 무겁고 침통하다는 말로 이 글을 쓴 전후의 사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대검찰청에서 KBS 뉴스 조태흠입니다.
국내 매장에 5~6개뿐… 문재인 망신주자는 거냐
최보윤 기자 손진석 기자
2009.04.23
노(盧) 부부가 받았다는 1억짜리 '피아제' 시계
박연차 회장이 2006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갑에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했다는 '피아제(piaget)'는 어떤 시계일까.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피아제는 '바쉐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 등과 더불어 최고가 시계군(群)으로 분류된다.
창업자 조르주 피아제(georges piaget)가 1874년 스위스 주라 지역의 라 코토페(La cote-aux-fees)에 시계 제조 공방인 파브리크 피아제(fabrique piaget)를 설립한 것이 그 토대가 됐다. 30단계의 수공 작업을 거친 섬세함과 세련됨으로, 재클린 케네디 등 유명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피아제 제품 중 가장 비싼 것의 가격은 30억원 정도다.
국내에 유통되는 제품 가운데 가장 싼 것은 700만원대이고, 가장 비싼 것은 1억5000만원가량의 '라임라이트 토노 풀 파베(tonneau full pave)'라는 제품. 다이아몬드 수십 개가 시계 자판 주위를 장식한 이 제품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에서 3개가 팔렸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받았다는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는 현재 국내 매장에 진열된 것이 5~6개뿐이며, 연간 10개 안팎이 판매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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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5년간 20억어치 사간 단골”
2009-05-02
■ ‘1억짜리 盧회갑선물’ 명품시계 판매 사장 인터뷰
“작년 9월 세무조사후엔 구입 안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2006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갑 때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스위스제 ‘피아제’ 보석시계세트를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가 1억 원 상당의 이 시계는 박 회장이 10년 가까이 단골로 거래해온 부산의 명품시계전문점 M사에서 샀다고 한다.
M사 사장 정모 씨(53)는 이 때문에 3월 대검 중수부에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가 그동안 박 회장이 사들인 고가 시계의 명세와 누구에게 선물한 것인지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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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는 지난해 1월과 9월 부산지방국세청과 국세청 본청에서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박 회장과의 거래 명세를 하나도 빠짐없이 제출했다고 한다. 이어 올해 3월에는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박 회장을 알고 지낸 지는 10년이 넘으며 간간이 전화통화도 하는 단골손님으로 보면 된다”며 “그러나 박 회장이 사가는 시계가 어떤 용도로, 또 누구에게 건네졌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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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는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건네졌다는 피아제 보석시계에 대해서도 “정상적으로 판매된 것이고, 언제 어떻게 팔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그것과 똑같은 시계세트를 보여줬다. 벽면 유리장 안의 조명 아래 진열된 이 시계는 시계 테두리, 줄, 자판 등 전체가 다이아몬드로 장식돼 눈이 부실 정도였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9050287274131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 ....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
.....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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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직원으로 청와대에 상주하면서 이발을 하기 시작한 것은 朴正熙 대 통령의 권유 때문이었습니까
『1969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간이 이발관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15평 규모의 전용 이발관이 마련된 직후 하루는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시기 위해 저를 찾는다는 전갈이 부속실에서 왔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朴대통령께서는 이발을 하시기 위해 이발관으로 들어오셔서는 저를 보고 「朴군, 이제 이발 시설도 갖추고 했으니 왔다갔다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떤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제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대통령께서 재차 「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싫은가」고 하시더군요. 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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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소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는 그날로 이발관 문을 닫아 버렸다고 한다. 朴씨는 이날부터 19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이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他界하는 날까지 항상 朴대통령 곁에서 생활했었다.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朴대통령은 주로 언제 이발을 했습니까
『이발을 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이발은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하셨는데, 아침 식사를 하시기 전에 하셨고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물론 國事(국사)로 바쁘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으신 적도 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히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뜨거 운 물에 담가 그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른 다음 스킨을 머리에 바르는 것으 로 이발을 끝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킨 로션도 비싼 외제 같은 것은 싫어 하시고 그 당시 국산 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특정회사의 제품을 좋아하셨습 니다. 향기가 마음에 드신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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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이 이발을 할 때 陸英修 여사도 자주 이발관에 오시곤했다는 얘 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陸여사께서 자주 이발관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朴대통령 머리 만져드릴 수건을 적당한 온도의 물에 적셔 저에게 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름에도 절전운동 때문에 이발관에 에어컨을 잘 가동하지 않았는데, 陸여사께서 선풍기를 들고 오셔서 朴대통령에게 틀어 주신 적도 많았습니다』
『朴대통령은 곱슬머리』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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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얘기를 하던 도중 한가지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소개해주었다. 신축한 비서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66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때는 전용 이발 공간이 갖추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머리 감을 때 사용하는 샤워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더운물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이날도 陸여사가 더운물과 찬물을 양동이에 받아와 세면대에 담아 놓았는데 머리를 감던 중 朴대통령이 비눗물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허리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타일이 부착돼 있지 않은데다 세면대도 낮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는 것.
朴씨는 당시 이 나라 최고 권력자가 이처럼 낡은 시설에서 이발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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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께서 이발관을 찾으실 때 정장 차림으로 옵니까
『아닙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하얀 러닝 셔츠 차림에다 허리띠를 맨 바지의 윗부분을 한 번 아래로 접고 오십니다. 바지의 허리 부분이 헐렁할 때 허리띠를 맨 부분을 한 번 접으면 어느 정도 맞지 않습니까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대통령이 구멍 난 러닝 셔츠를 입고 계셨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는 갑작스럽게 朴씨로부터 逆질문을 받는 바람에 조금은 당황스러워 「그냥 계속하시죠」라고 넘겼다)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어르신, 이제 허리띠를 좀 바꾸시지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이 사람아, 이것도 아주 편 해. 몇 년은 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라며 웃으시더군요』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朴正熙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상관이었습니까
『朴대통령은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부속실로 하여금 이발하러 가겠다는 연락을 하도록 한 뒤 5분 정도만 늦어질 것 같아도 직접 이발관에 오셔서 「朴군,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래이」 하시면서 양해를 구하십니다.
한 번은 연락을 받은 뒤 40여 분 만에 이발을 했는데, 이때에도 朴대통령께서 중간에 이발관으로 오셔서 「미안해서 우짜노. 朴군, 일 마치고 바로 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 하시더군요. 도리어 제가 미안해 「어르신 저는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각하시지 말고 충분히 집무 보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래 고맙대이」라며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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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clientreporterwriterboardread.aspidx=28&cPage=16&wid=soonj
청와대 이발사가 본 「인간 박정희」; 『어르신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송승호
2001.11.01
박정희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1979년10월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 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 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게 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계용 소령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가 원수처럼 욕을 퍼붓고 있는 박정희는 죽을 때 평범한 세이코,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해진 혁대를 차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물통에는 벽돌 한장씩 들어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에는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 기름 절약을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통제했던 그는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서 더위를 견뎠다. 벌레가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았다.
그가 죽을 때 입고 있던 바지는 허리 부분을 수선하여 늘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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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글쎄 ....... ]
“수십 년 지나도 8·15 돌아오면 수술받던 육 여사 생각나”
중앙선데이
2011.08.13
한나라당 비례대표 이애주(65·사진) 의원은 간호사 출신이다. 그의 간호 경험은 남다르다. 1969년부터 35년간 서울대 병원 간호사로 일했는데 대부분의 기간 동안 VIP 병실 책임자였다. 젊은 시절 그는 파독(派獨) 간호사를 꿈꾸던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징그러운 가난을 떨쳐 버리기 위해 돈 많이 벌 수 있는 풍요의 나라를 떠올렸다. 하지만 꿈과 달리 특별한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74년 초 VIP 병실인 특실(301호) 담당 수간호사가 된 뒤 그는 이승만·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을 서울대 병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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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에게 오랜 병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다. 37년 전인 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의 서거를 꼽았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 저격범 문세광의 네 번째 총탄이 육영수 여사의 머리를 관통했다.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글쎄…”라며 육 여사의 베치코트 얘기를 먼저 꺼냈다. 한복 치마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종의 속치마가 베치코트다. 통상 한복을 맞출 때 한꺼번에 만든다. 하지만 육 여사는 단을 덧대 3단으로 재활용한 베치코트를 최후의 순간에 입고 있었다. 듬성듬성 꿰맨 손바느질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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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여사는 그날 오전 10시23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저격범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았다. 원남동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게 9분 만인 10시32분. 응급 조치와 뇌 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깎는 데 20여 분이 걸렸다. 광복절 휴일이었지만 집에서 TV를 지켜 보던 의료진이 속속 병원으로 뛰어나왔다. 11시쯤 신경외과 과장 심보성 교수가 메스를 들어 시작된 수술이 오후 4시20분까지 5시간 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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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평소 301호실을 이용했나.
“입원한 적은 없지만 79년 10월 초 입원 계획이 있었다. 안과 수술이 예정돼 내가 동대문시장으로 침대시트·치약·칫솔 등 병실 비품을 사러 다녔다. 국산품이 아니면 대통령께 야단맞기 때문이었다. 1m65㎝ 체구에 맞춰 국산 가운과 슬리퍼를 장만했다. 하지만 부마 사태 등으로 입원이 연기되더니 10월 15일 입원한다고 다시 통보가 오고, 이어 10·26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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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인가.
“특실에 오는 분은 예외 없이 예외를 원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병원 규칙을 가장 지키지 않는 분들이다. 아프지도 않은데 입원해 하루 종일 사람 만나고 물건이라면 모두 외제품이고….
나는 박정희 대통령 때 야당 의원은 민주주의 화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 생활하면서 환상이 많이 깨졌다. VIP가 입원하면 통상 우리 직원들이 알아서 예외를 감수한다. 그래도 힘든 일은 넘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애기 울음 소리 녹음하려고 병실에 녹음기를 켜 놨는데 간호사가 몰랐던 모양이다. 간호사가 ‘아기만 국산이네’라고 중얼거린 말이 녹음돼 난리가 벌어졌다. 어떤 장관님은 병원에 에어컨 고장 났다고 병원비를 깎으라고 호통치고…. 박정희 대통령 때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 중 쓰러져 5년 반이나 입원한 VIP가 있었다. 우리는 의식불명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TV에서 박 대통령 뉴스가 나오자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라.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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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596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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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이재명
[ ......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매국 쿠데타 세력으로 이는 보수의 영역이 아니고 쓰레기 영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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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시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훼손한 것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매국 쿠데타 세력으로 이는 보수의 영역이 아니고 쓰레기 영역이다”라고 질타한 뒤 “이런 보수의 탈을 쓴 부패한 세력을 도려내고 이재명 같은 사람이 보수의 영역을 차지해야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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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0805§ion=§ion2=
이재명 성남시장의 ‘혁명론’ 직접 들어보니
공정 질서 구축하고 집단지성의 유기적 인격체 믿어야”
송영한 기자
20161220
[ ......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 ....... ]
이재명, 4년전 “이승만 친일매국… 美 사드배치, 조선말 日 닮아”
과거발언·저서로 본 李지사의 역사관
김형원 기자
입력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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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2017년 1월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직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찾아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에만 참배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지나친 이유에 대해 당시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였다”고 했다.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들 광주 학살을 자행한 그를 추모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또 현 야권을 ‘친일 독재 매국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 지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친일 독재, 매국(賣國) 학살 세력이 이 나라 다수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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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김혜경
[단독] 김혜경 수십인분씩 '샌드위치깡'… 이재명, 도민 세금으로 아침식사 의혹
전성무 기자, 이지성 기자
2022-02-03
경기지사 공관 행사용 샌드위치, 이재명 집으로 대량 빼돌려진 정황
공무원이 10~30인분씩 대량 구입… 법카나 개인카드로 결제 후 '카드깡'
제보자 A씨, 성남 수내동까지 배달… 배소현이 받아 李 자택으로 들고 가
A씨 이재명 샌드위치 좋아해 아침마다 갖다줘… 李 측 확인해 보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경기도청 직원들이 지사 공관 행사 등 명목으로 대량의 샌드위치를 구입한 뒤 이 후보 자택으로 수시로 배달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 샌드위치는 도청 법인카드나 비서실 직원의 개인카드로 결제됐고, 집으로 배달된 샌드위치를 부인 김혜경 씨가 이 후보의 아침식사로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3일 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청 별정직 7급으로 근무했던 제보자 A씨는 이 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시기 경기도청 5급 사무관이던 배소현 씨의 지시로 샌드위치를 구입해 매번 이 후보의 경기도 성남시 수내동 자택으로 배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이 후보가 지사직을 그만둔 지난해 10월까지 근무했다.
지사 공관의 오찬·만찬 등 각종 행사 때 필요한 음식 등 물품을 법인카드로 구입하면서 샌드위치와 과일을 종류별로 대량 구입해 이를 이 후보 집으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한 번에 적게는 10인분, 많게는 30인분 정도가 이 후보 집으로 배달됐다고 한다.
A씨가 샌드위치를 포장해 이 후보의 성남시 수내동 자택 인근 육교 밑 등 다수의 장소로 이동하면, 배씨가 이를 받아 이 후보 집으로 직접 배달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일은 A씨가 다 하고 배씨가 이 후보 부부에게 생색내는 식이다.
법인카드 사용이 여의치 않은 시간대일 경우에는 배씨나 A씨의 개인카드로 결제한 뒤 나중에 이를 취소하고 법인카드로 다시 결제하는 '카드깡' 수법도 동원했다고 한다.
A씨는 주변에 이 후보가 경기지사로 있는 동안 내내 이런 일을 해왔다며 이 후보가 샌드위치를 좋아해서 아침마다 수내로 집 앞 등으로 샌드위치를 갖다줬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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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A씨는 KBS 등 언론을 통해 이 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할 때인 지난해 4월 배씨의 지시를 받아 개인카드로 소고기를 구입해 이 후보 자택에 전달했고, 다음날 결제를 취소한 뒤 경기도청 비서실 법인카드로 재결제했다고 폭로했다.
소고기 외에도 김씨가 복용할 약을 대리처방받아 전달하거나, 이 후보 부부의 장남 동호 씨의 병원 퇴원수속을 대신 밟아 줬다고도 했다.
김씨의 차 앞으로 지나갔다는 이유로 배씨가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의전의 '의'가 안 돼 있다는 등 A씨를 질책하는 갑질 정황도 드러났다.
김씨는 2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배씨도 같은 날 사과문을 내고 이 후보 부부에게 잘 보이고 싶어 그랬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후보도 3일 경기도 재직 당시 근무하던 직원의 일로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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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02/03/2022020300094.html
이승만
[ ..... 보통 나물 두가지에 국 한가지로 식사를 했다 .......
......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 ]
[ .....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
.....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 ]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 했지요
1947년 이화장 뒷집에 살았던 인연으로 李承晩 대통령 일가와 14년간 생활했던 方在玉(71)씨를 만났다. 이화장을 시찰하러 왔던 李起鵬씨가 그녀에게 청소를 부탁했고 그 일을 계기로 이화장에서 경무대, 다시 이화장까지 대통령 내외와 가장 가까이서 지내게 되었다. 경무대 禹石根(우석근) 경사와 결혼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을 매우 자상한 분, 프란체스카 여사는 매우 알뜰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方在玉씨가 맹장염에 걸렸을 때 대통령은 方씨의 아버지를 경무대로 불러서 수술을 시켜도 좋은지 물은 다음 수술하게 했다. 처녀의 몸에 칼을 대려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탈한 성격의 李承晩 대통령은 보통 나물 두 가지에 국 한 가지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손님을 초대했 을 때 외에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 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 았어요』
프란체스카 여사는 경무대에 있을 때도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실핀으로 머리를 감았다가 드라이로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옷도 산 적이 없다 고 한다. 천을 구입해 와서 비서인 김신영씨와 함께 블라우스를 만들어서 입었다. 경무대에서도 옷을 꿰매 입는 건 여전했는데 어느 날 대통령이 方在玉씨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대통령께서 내복을 들고 저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하시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던 기억이 나요. 너무나도 알뜰하신 영부인이었죠.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무섭게 절약하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영구 귀국하실 때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14년간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대통령의 수발을 들었던 方在玉씨는 두 사람이 부부싸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이 급한 성격이어서 화를 내면 할머니(方씨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할머니라고 지칭했다)가 일단 피하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되지 않아요.
할머니가 李대통령의 음식을 일일이 만들어 드리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일일이 확인해 봤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지시를 하면 우리들이 알아서 척척 했지요. 우리들에게 많이 맡겼어요. 소탈한 성격이어서 아랫사람들 하는 일에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언제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사람 차별하지 않고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늘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셨지요. 한국말을 배워서 우리들에게 간단한 명령어와 단어를 사용해 말씀하셨어요.
두 분은 아랫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내셨어요. 그야말로 인정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셨어요. 제가 허리가 아파 고생할 때 할머니께서 허리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손으로 맛사지해 주셨던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명절 때 선물이 들어오면 모아두었다가 일하는 사람들 생일이 되면 나눠주셨어요』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나이가 많아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고 말하는 것은 와전된 얘기라고 전한다. 아침마다 자신이 직접 일간신문과 경제신문을 갖다 드렸고 신문을 꼭 읽었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李起鵬씨의 아내 박마리아와 유일하게 친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것도 잘못된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열 국방장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윤치영 내무장관의 부인들과도 친밀하게 지냈으며 정운수 의원 부인 편정희 여사, YWCA 총무였던 박에스더, 이화여대의 金活蘭 박사, 김신실·김영의 교수,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씨 등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경무대로 프란체스카 여사를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김활란 박사와 임영신씨는 李承晩 대통령 영결식 때 흰족도리를 썼을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하야하던 날 경무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울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고 일러주었다. 이화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름이 없어서 총무처에 기름을 좀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쌀을 살 돈이 없어서 온실의 화초를 팔아서 쌀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돈이 없어서 우리들에게 월급을 못 주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두 분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들 이화장까지 따라왔어요. 함께 생활하면서 두 분에게서 무엇 하나 어긋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검소하고 소박하고 너무도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지요』
대통령 내외가 하와이로 떠나자마자 경찰서에서 나와 물건에 딱지를 붙이고 물건을 실어 내갔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울었다고 한다. 짐을 실어 내가고 폐가처럼 되어버린 이화장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경무대 식구들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정기적으로 찾아뵈었고 方在玉씨를 비롯해 경무대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프란체스카 여사 영결식 때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경무대 식구들은 아들 李仁秀씨 가족들과 내왕을 하고 있다.
『전 정치적인 건 잘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기운 옷을 입고 아끼느라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모습은 모든 국민이 본받아야 돼요. 그때 경무대에서 일하던 사람들끼리 그랬어요.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요. 높은 자리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方씨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록새록 李대통령 내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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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 음식은 검박하고 서민적이다. 새우젓은 으뜸으로 치는 음식 재료다. 찌개도 고기 대신 새우젓을 넣어 담백하게 끓여낸다.
아버님께서 새우젓 들어간 음식을 아주 좋아하셨어. 우리 집 음식 중에 사치하는 게 있다면 이 새우젓이야. 한 깡통에 8만원 씩이나 하는 걸 1년에 세통은 사야 하니까..
이화장 안주인인 이대통령 며느리 조혜자(56)씨는 시어머니 프란체 스카 여사 시절 입맛을 고스란히 잇고 있었다. 새우젓국에 집에서 만든 두부를 듬뿍 넣어 부드럽고 고소하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외국 국빈들 을 접대할 때도 평소대로 새우젓을 넣은 찌개를 올리곤 했다.
우리네 음식이야말로 어머님,아버님이 장수하신 비결이었어. 아버 님은 아흔, 어머님은 아흔둘에 타계하셨는데, 두분 다 기름기를 멀리하 고 콩과 두부를 즐겨 드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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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찌개도 거의 빼놓지 않고 식탁에 오른다. 이대통령 양자인 이화 장 주인 이인수 박사 역시 부모 입맛을 그대로 닮았다. 우리집 비지찌개는 꼭 두부를 걸러낸 비지로 만들어. 뭐니뭐니 해도 그게 비지의 제 맛이라고 어른들께 배웠거든. 우리집 양반도 비지찌개 하나면 밥 한 그릇을 금방 비우시지..
경무대 시절 주방에서 좀더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두부를 거르지 않은 비지를 썼다. 그랬더니 이대통령은 이 맛이 아닌데… 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조씨가 끓여낸 비지찌개는 맛과 모양새가 토속적이다. 걸쭉하고 투박한 진짜 비지와 풋고추, 홍고추가 어우러져 영락없는 시골집 어매 손맛이다.
어머님은 김치를 담그시다가 무가 달고 맛있으면 깎아 나눠주시곤 했어.시루떡을 즐겨 드셨고 떡국 끓이는 솜씨는 전문가셨지. 하와이 망명시절에 어머님이 끓이신 떡국이 어찌나 맛있든지 아버님께서 단숨에 두그릇을 비우셨대. 전형적인 한국 아낙이셨지. 국민들이 못 먹고 못 입는데 어떻게 사치하느냐고 입버릇처럼 걱정하시던 분이야..
프란체스카 여사는 평생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협립우산 한개를 30년 넘도록 사용했고, 옷은 물론 양말과 스타킹도 기워 신었다. 열두폭 스란치마를 휘날리지 않았어도 생활에서 배어나던 그의 기품이 아직도 이 화장 거실에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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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
..... 경무대에서 모임에 초대되었다가 고픈 배를 안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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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李承晩 대통령은 「냉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일가 친척들을 경무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대통령의 甥姪(생질)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생질 남매에게 금족령을 내려서 경무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 지요. 그런 분이었으니 당신께서 不正(부정)을 할 리가 없지요. 4·19 때 李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몇백억을 예치해 놓았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지 금까지 한 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금전적으로 깨끗한 분이었습니다』 李承晩 대통령이 수행원들에게 늘 당부한 말이 있었다고 한다.
『「냉수먹고 된똥 싸라. 밖에 나가서 경무대 석 자를 팔지 말라」고 하셨어요. 경무대를 등에 없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말라는 의미였죠. 그 말씀을 자주 하셔서 항상 수행원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張勉(장면) 정권이 들어서서 강도 높은 조사를 했지만 경호원 가운데 부정과 연루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호원이었던 곽영주씨가 사형을 당한 것은 4·19 때 발포 사건과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얘기인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어느 해는 비서실 예산을 반납시켰을 정도로 경무대 사람들도 검소하게 지냈습니다』
李대통령은 항상 뭔가 골똘히 구상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金正旭씨가 바라본 李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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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면 수행원들에게 와이셔츠를 하사하곤 했는데 그것도 모든 수행원들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몇몇에게만 주었다.
『경호원들에게 봉투에 돈을 넣어서 준다든가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 두 분이 워낙 검소하게 사셨기 때문에 남에게 선물을 줄 만한 물건이 없었어요. 저도 몇 번 와이셔츠를 받았는데 영광이었지요. 한번은 쓰시던 중 절모를 저에게 하사하셨습니다. 대통령의 중절모를 아버지께 갖다 드렸더니 몹시 기뻐하시더군요. 대통령께서 대신 나에게 충무로에 가서 중절모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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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 대통령의 유일한 취미는 낚시였다. 광나루 워커힐 아래 강가나 경복궁 內의 경회루에서 매주 토요일 낚시를 했다. 낚시 외에는 가끔 비원을 산책하면서 깊은 상념에 젖곤 하는 것이 취미생활의 전부였다.
『술도 마시지 않으셨어요. 오로지 모든 시간을 나라 살리는 일에만 투자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살 만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國運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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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 사흘 후 1차 선발대가 대구로 떠나고 다음날 2차 선발대가 대전 으로 갈 때 金正旭씨도 합류했다. 李대통령은 대구에서 대전으로 옮겨와서 『왜 나를 멀리 보내려 하느냐. 나는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 만 戰勢(전세)가 좋지 못해 수행원들이 서울로 가려는 李대통령을 충남도지사 관저에 모셨다.
『대전 모기가 대단합니다. 모두들 고생이 많았지요. 戰時여서 대통령 내외를 편하게 모실 수가 없었어요. 두 분께 따로 식사를 차려드리긴 했지만 먹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李대통령은 대전에서 사흘 간 머무는 동안 수원으로 가서 미국 측과 회담을 하고 오기도 했다. 대전에서 다시 진해에 있는 대통령 별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밤이면 등화관제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 어두운데다 초행길이어서 수행원들이 대통령을 안전하게 모시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날 밤 비까지 오고 있었다. 수행원들이 그곳 지리에 밝은 충남도지사에게 안내를 부탁했지만 자유당 소속이 아니었던 그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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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들에게 별로 말을 건네는 일이 없는 李承晩 대통령이 전쟁중에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맥아더가 왜놈들을 상륙시켜 北進하자고 하는데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물으셨어요. 모두들 묵묵부답이었지요. 그러자 「나는 왜놈이 한국에 발을 들여 놓으면 총부리를 왜놈들에게 대겠다. 왜놈은 우리 땅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대통령 일행은 仁川상륙 직후인 9·28 수복 때 서울로 돌아왔다가 1·4 후퇴 때 다시 피난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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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 듣지 않았다
金正旭씨는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퍼스트 레이디가 한국 부인이었다면 경무대가 조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프란체스카 여사의 가족 가운데 아무도 한국에 살지 않아 외척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아예 없었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너무나 검소하고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계절마다 옷이 한 벌씩밖에 없었어요. 거의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경무대에서 모임에 초대되었다가 고픈 배를 안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경무대에 초대받았으니 점심을 주겠지 생각하고 왔던 분들이 간단한 다과만 대접받고 가면서 굶고 간다고 말하곤 했죠. 특히 과자를 프란체스카 여사가 직접 구워 대접하였는데 그 일로 초대받은 이들이 감격하곤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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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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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군은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뒤에도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 분은 특히 먹는 데 그러하였습니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2년 그의 친구인 한양대 교수 김병희씨가 박의장 방에 들렀다가 놀란 이야기를 쓴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김병희씨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의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첫 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하였다. 특히 그가 앉은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나무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급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양담배였다.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데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원짜리 고급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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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page=0&C_IDX=11579&C_CC=AZ
명동에서 철조망 치고 농사짓는 사나이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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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1960, 70년대 학교에서 매주 한번씩 실시했던 ‘분식의 날’을 언급하며 “보통 보리밥이나 콩밥을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박 전 대표는 메추리알 크기의 감자만 도시락에 가득 담아왔다. 몸소 실천하는 자세와 국민과 함께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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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01100
박근혜는 학생때도 원칙주의자
[중앙일보] 입력 2009.05.09
[ ..... 검소한 식생활은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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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접해본 이들은 그가 특히 먹거리에 있어서 검소했다고 증언한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인 1970년대 중반 청와대는 경제 관련 부처 장관과 재벌총수 그리고 여야 대표 등이 참가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는데, 박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뒤 점심식사로 우동이나 비빔밥 등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비록 말년에는 요정을 자주 찾았지만, 그의 검소한 식생활은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는 게 추종자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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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검소하고 청렴했다고 하지요. 대표적으로 어떤 게 기억납니까.
“그때는 쌀을 아끼느라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지 않았습니까. 박 대통령은 아침밥엔 보리를 30% 섞었고 점심엔 칼국수를 드셨습니다. 저와 부속실장 등 본관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점심때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집무실 책상에서 점심을 때웠지요. 오후 서너 시쯤 되면 배가 고파 참느라고 혼났어요. 비서들은 누룽지라도 찾으러 식당을 기웃거렸지요.”
-칼국수를 드실 때 공깃밥이라도 한 그릇 같이 드시지 그랬습니까.
“아니 쌀을 아끼려고 국수를 먹는데 어떻게 밥을 먹나요. 그리고 대통령께서 그렇게 하시질 않는데 제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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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40796
“5·16은 근대화 혁명이라고 국내학자들도 이젠 인정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0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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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빠짐 없었던 보리 잡곡밥
박 대통령은 물욕이 없었고 하물며 재산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는 분으로, 이 사실은 서거 후 모든 국민이 실감하고 있는 바와 같다. 나는 그 많은 현장 확인과 현장 지도의 길에 항상 박 대통령을 자동타 또는 헬리콥터 편으로 수행하였다. 아마 나만큼 민간인으로서 헬리콥터를 많이 탄 사람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 기상에서 여기저기 우뚝 솟을 아파트 단지, 아름다운 농촌 주택, 크고 작은 공장들과 대규모 다목적 댐과 방조제, 그리고 간척지 등을 내려다보며 마치 대통령 자신의 아파트나 집과 공장들이 늘어나고 대통령 소유 농장의 구조물이 이것저것 늘어나는 듯 기뻐했다. 박 대통령은 자기 개인의 재산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라의 경제와 살림살이가 잘 되는 것만 바라고 또 기뻐했다.
나는 박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파리채를 기억한다.
박 대통령이 살던 본관 2층과 집무하던 1층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뜻이었다. 선풍기는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열기가 닥치면 박 대통령은 창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파리가 날아들어 오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곤 하였다.
2층 서쪽 구석에 있는 내방은 오후 내내 뜨거운 햇볕으로 달구어졌다. 땀이 많이 흘렀지만 대통령이 틀지 않는데 내가 선풍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박 대통령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지금처럼 건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쌀을 아끼려고 혼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을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나, 의전수석, 비서실장 보좌관 등 본관 식구들은 똑같이 국수를 먹었다.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점심은 국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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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454707&ctg=10
김정렴정치회고록16. 박정희 대통령의 근검절약
[중앙일보] 입력 199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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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1년 다수확 통일벼가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하고 영농기술이 향상되면서 1977년 쌀 자급 시대가 열렸다. 정부는 분식의 날도 없애고 쌀 막걸리 제조도 14년 만에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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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 유학 못 보낸다고 했다”
박근령 이사장 “청와대서 보리밥만 먹어 아직도 잡곡밥 먹어”
조선닷컴 internetnews@chosun.com
200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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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이사장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으면서도 늘 검소함을 강조했던 일화도 밝혔다. 박 이사장은 “청와대에서 항상 보리밥을 먹어서 지금도 잡곡밥을 먹는다. 어릴 때 흰 쌀밥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박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었다고 했다. ‘왜 유학의 꿈을 접었냐’고 묻자, 박 이사장은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는 유학을 못 보낸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언니는 공부를 잘해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1등으로 졸업하고 장학금 받아 갔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지방에 내려갈 때 추풍령이 가까워지면 아버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할 때 여기가 제일 난공사 지역이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그분들 생각하며 묵념이라도 하고 가자’고 하셨다”고 말했다고 월간조선은 전했다. 박 이사장은 또 “차를 타고 가면서 아버지는 다리 이름, 터널 이름을 일일이 물어보셨고, 우리가 그걸 다 외웠다. 아버지는 ‘다리 하나, 공장 하나를 건설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셨다’고 했다”고 월간조선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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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 파텍 -- 김정은 ]
스위스, 북한 자산 전면 동결·은행 계좌 폐쇄
2016년 05월 20일
■ 고영환, 前 북한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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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치품도 지금 제한이 되죠
[인터뷰]
그렇죠.
[앵커]
사치품 이걸 딱 보면 제가 사치품을 잘 몰라서.
[인터뷰]
파텍필립이라고 시계가 제일 싼 시계가 8만 프랑이 제일 쌉니다. 우리 돈으로 한 9000만 원 정도되는데 그게 제일 싸고. 김정일이 첫 등장할 때 나온 시계가 파텍필립스인데 그건 1억 5000짜리 시계거든요. 주문생산하는 시계이고. 그것은 정말 웬만한 사람들이 차지 못하는 주문을 딱 해서 들어가는 시계인데 시계 하나에 1억 5000만 원 정도합니다.
[앵커]
1억5000만원. 김정은이도 물론 그러니까 차는 건데. 그리고 지금 육아용품 같은 것도 나오고요. 그다음에 수제 스키, 김정은이 스키도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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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tn.co.kr_ln0101_201605201931509365
김정은 시계 변천사…스위스 사랑 변함없어
2020-10-12
2016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 스위스의 대북 시계 수출 금지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차고 나온 시계가 스위스제 고가품인 IWC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 위원장이 그동안 찬 시계는 모두 스위스제여서 스위스가 ‘시계의 나라’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 됐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18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찬 시계 역시 스위스제 모바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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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촬영된 사진에서 김 위원장은 스위스제 파텍 필립으로 추정되는 제품을 찬 모습이 포착됐다. 1999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1933년에 제작된 파텍 필립 시계가 당시 1100만 달러(약 123억원)에 낙찰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통과된 대북 제재안 2270호는 무기 거래뿐 아니라 고급 손목시계와 같은 사치품도 교역중단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이미 대북 제재 2094호에서 명시했던 진주, 보석, 보석용 원석, 귀금속, 요트, 고급자동차, 경주용차 등 7개의 사치품 목록에 고급 손목시계, 수상 레크리에이션 장비, 스노우모빌, 납 크리스탈, 레크리에이션 스포츠 장비 등 5개 품목을 추가한 것이다.
▲ 2010년 김정은 당시 조선인민군 대장이 스위스제 파텍 필립을 찬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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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도층은 고급 시계를 통치에 활용했는데 김일성 주석은 측근들에게 스위스제 오메가 시계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어 선물했고, 이 같은 관행은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열병식에 김 위원장이 착용한 것으로 관측되는 IWC 역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초고가품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012500033&wlog_tag3=naver
“김정일, 고가 롤렉스 선물 주고 공연 보며 눈물도”
2013-05-02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탈북 시인 장진성 씨가 국내에서 출간한 회고록 '시를 품고 강을 넘다'가 내년 봄 영문판으로 출간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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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는 1월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감정이 격앙됐지만 직접 만난 김정일은 내가 세뇌당한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당시 장 씨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1만 1000달러(약 1200만 원)짜리 명품 '롤렉스 시계'를 선물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는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면책되는 이른바 '신성한 면책 특권(sacred immunity)'도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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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30502548595931
현송월 '악어가죽백'은 2500만원짜리 에르메스 제품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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