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성의 시가있는 풍경 목록 ( 총 : 16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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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발효
양철집 비닐하우스라 깔보고 막걸리며 맥주를 흔들어대지 마라허기로 가득 찬 분노가 깨어나리니향기 나는 위스키며 샴페인도더는 그들 앞에서 터뜨리지 마라덧댄 뒤축이 닳도록 빚에 쫓기고번번이 속고 속아 문드러진 억장이갈치 내장 젓갈처럼 부글부글 게우다가뚜껑이 열리는 순간 폭탄처럼 널브러져격조의 그 식탁이 온통 쑥밭 되리니그들은 일찍이 그 두려움을 알기에창살은 더 두껍게창문은 더 어둡게뚜껑은 더 죄고 틀어막는 오늘 아직도 우울한 거리에는처절한 하루를 숙성시키지 못한기한 넘은 막걸리며 김빠진 맥주가거품처럼 사라져간 효모를 기다리며내일의 발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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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삼십 년 전 그는예리한 비상을 꿈꾸던 한 대의 애기살여섯 자 근사치의 우뚝 선 수직의 중심태산 같은 침묵을 깨뜨린 거문고 같은그의 시위가 눈동자를 꿰는 그 순간까지도공중을 가르는 우아한 그의 비행이바람과 중력의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오로지 곧게만 나는 줄 알았던그러나 뱀장어 혹은 만취한 귀갓길처럼뒤틀린 유영의 연속이라는현미경처럼 해체된 진실 앞에서아뿔싸, 뒷걸음 물러나려 했을 땐연모로 겹가슴 중심을 관통당한스무 살 갓 넘긴 얼룩진 과녁 아프고도 팽팽한 시간이 휘어지고풀린 활시위 힘줄 그리운 날새벽 방광처럼 터질 듯한 반탄을 접고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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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포, 그 두려움
간밤에 머리맡에 떠둔 자리끼투명한 유리잔 벽에 맺혀진주처럼 혹은 암세포처럼점점 커져가는 기포들공간을 감쪽같이 숨겨 온 물과물속에서 저런 우주를 만드는 기포에의 경외아, 매일 밤 저 물을 마셔온내 안에도 이미 자라고 있을배신의 음모처럼 알 수 없는 두려움달리 열 받음 없이도소리 흔적 없이 떠나버릴결코 붙들어 맬 수 없는 투명의 공간허망인지 희망인지조차 모를내 안의 거품, 거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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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날을 갈고 세우며 세상을 그린다지우개의 달콤한 유혹도 외면한 채한평생 품어온 심지 꺾지 못할 통나무네 결코 칼날을 두려워 말라살점이 쓱싹 베어지는 아픔 없이는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예지를 벼릴 수 없으니네 뼈를 깎지 않고서야어찌 외진 곳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더냐두려우면 볼펜이나 만년필이 되라그리하여 저항할 수 없는 중력에 순응하며부르는 대로 받아쓰고채운 먹물을 호사스레 뿌릴 일이거니더는 굽힐 수 없는 까닭에욕조에 머리통이 잠기거나 혹은밀실 철봉에 거꾸로 달려허리 꺾여 혼절해도 굴하지 않을여섯 번씩 모난 너의 이름 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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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비 오는 날우산을 함께 쓰고 걷는다 기울어진 마음만큼그대 쪽으로 기우는 우산 아무리 큰 우산을 펼쳐도매번 젖어오는나의 한쪽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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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
담채화 같은 과거를 보여 줄 뿐후진에서 찾는 전진의 반전된 은막바람처럼 스쳐 간 어제는공간의 시간적 이동에 불과하다지만사노라면 항상 사각지대는 있는 법백색과 황색 연속선 상금지를 넘나들던 흔적들과 잔해들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처럼부들부들 떨고 있는 속도계와벼랑 끝에 매달린 핸들의 몸부림에여태 무심코 보아 온차창 밖 백미러의 외줄기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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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귀여운 두개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힘살 빠진 허리뼈는 활처럼 휘고휠체어 구르는 바퀴 소리가전생의 업보인 듯 가슴에 꽃힌 비수뽑지 않고 살아가야 할 듯 울지마라울지도 말자마냥 울고 있을 수만 없지 않으냐저리 천진한 표정과 웃음소리를짧은 소풍 놀이로 기억하고애써 보듬고 다독이며 가자그래, 그렇게 그렇게 가자다시 뜀박질하며 만날먼 훗날을 그리며기도하고 또 기도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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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
그리움 켜켜이 쌓이는 밤이 지나면 그대 생각들을 접어 책갈피에 갈무리한다. 시간이 흐르고나면 그것들은 숙성된 연모의 싹으로 거듭나 연리지를 접목하는 촉매의 진액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낯선가지끼리 부대끼어 껍질이 까지고 피가 나고 진물이 흐르고 아물기를 수백 번. 그러면서 한 몸이 되어가는 아픔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바람이 분다고 아파하지 마라. 살을 에는 바람이 있어 하나가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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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이제 더는 나를 낭비하기 싫다며피 묻은 손에 쥔 꽃병 파편을앞에 내던지고 사라질 듯먼발치에서 서성이는 이별의 예감 언약을 아로새긴 화분 속에는오랜 산만함에 흐느적거리며꼬인 벌레 엉겨 붙은 안개꽃 다발물감도 채 덜 마른 슬픈 수채화끊임없이 밀려드는 백사장의초각난 스티로폼 폐기물 조각처럼쌓이는 판도라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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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밍의 법칙
지남철 자력선의 크기는너와 나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관심의 질량에 비례하는 것나의 원심력과너의 구심력의 임계점에서변수로 존재하던 슬픔의 크기반복되는 작용과 반작용나의 자력선과 너의 전류와 힘의 향방빛과 어둠과 난기류와도 무관한엄지손가락에서 뻗어나는 애증플레밍의 왼손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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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쟁기질과 써레질의 아픔을 견뎌 낸고르게 아문 평온이 있는 논이라서야 여름비에 안개 핀 산 그림자며손 베일 듯한 초승달 가라앉혀풍경으로 그려지는 무논의 됨을지금의 나는 상처와 굴욕으로 얼룩진여백 하나 없는 빛바랜 종이쪽누구도 붓을 들지 않으리라다만 잘삭아서 부드럽다며몇 번 더 짓구겨 측간으로 달려가거나나는 알고 있다나를 쟁기질해 물을 채우고밑그림에 싹을 틔울 그 누구를기다림이 얼마나 아득한 꿈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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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
송연한 모공이 분화구처럼 펼쳐진 평원박동으로 꿈틀거리는 푸른 강물이 흐르고하늘에 흰 줄을 긋는 제트기의 흔적처럼감마나이프가 스친 자리마다잘려진 파이프라인에서 분출되는 붉은 마그마 망설임과 선택의 갈림길에서새벽녘의 잔별처럼 희미해지는 단어들꼬리를 붙잡던 연두부 조직의 보루를 뚫는굴착기의 소음과 상기된 무영등 불빛흐르던 붉음이 멈춘 자리의 검은 울음들 높다란 신의 영역을 연결하던 투명의라인은 걷히고 생명의 길이를 측정하던스코프의 펄스파도 맥류가 된 지금안면을 대신하는 조화들의 행렬들지난 흔적을 지우며 바쁜 손놀림으로 대기자를 불러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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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가족과 무리를 지키려바윗돌에 날카롭게 벼르고통나무를 수없이 들이받던용감한 수컷의 왕관 한때는 뜨거운 피가 흐르던탐욕의 눈길이 녹용이라 불렀던말랑하고 부드러운 돌기지켜야 할 것이 늘어가면서 강철처럼 단단하게 굳어졌으니 장렬한 주검에도 차마 눈 못 감고핏발 선 눈알 부릅뜬 채적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예리하고 섬뜩한 삼지창 한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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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듬지
불드는 중력을 거스르며가뭄 깔린 한여름의 양수기처럼물을 밀어 올리는 뿌리와두레박처럼 물을 받아 올리는하늘고층 빌딩을 한층 한층 밀어 올리듯덩굴손이 올라다긋 그렇게아래가지는 자람을 멈추고윗가지로 올려보내는 순차의 섭리물이 힘껏 다다른 숲의 끄트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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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이름
보름달이 뜨면뒷산 능선에서 들려오는 늑대의 울음소리생명을 잉태한 태초의 바다를 만조 수위로끄집어 올리는 무궁한 달의 저력홍등을 기다리는 구중궁궐의 후궁들 마냥보름달은 농익은 석류를 밀어내고간택을 기다리다 지쳐 붉게 터져버린 울음들소리를 감추고 주검을 감싸는 수의지하철 광고판에 새겨진 자유라는 이름의매달린 석류꽃이 다 지고 나면 비로소 얻게 될그 이름, 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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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해바라기의 화신처럼핏발 선 사람들을 쫓아 도는 너결코 그 발에 입맞춤은 하지 밀라비록 네 목숨이 발밑에 있기로사람들이란 빛도 양분도 주지 못하고오로지 물가처럼 치솟는 혈압과달아오른 겨드랑이를 식히고자네 가냘픈 목과 허리를 유린하는 무리 슬프게도 너는 글을 아는 노예처럼뜨거운 분노를 비수처럼 감추고끊임없이 탈출을 기도하는 바람의 후예전폭기를 이끌고 포화 속을 날다가일순간에 부서져 추락하고 싶은철창 속의 꿈꾸는 날개절망과 희망의 기막힌 공생아, 벽 깊이 박힌 끊은 수 없는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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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남의 암으로 자기의 암을 고치려는사람들의 몸부림과 아우성대지에 귀를 대고 말발굽 소리를 듣는 인디언주술사의 방울소리와 주문이 어우러지고신의 음성을 기다리는 불기둥 사이로제물이 된 포로의 찢긴 가슴 위에는건져진 물고기처럼 꿈들대는 심장평면에 드러누웠던 직선이수직으로서서 면을 만들기까지는그 누구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고아직도 도는 그것들은 중심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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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모짜르트의 음악을 듣고도대체 요상하고 어려워알 수 없다고 투정하지 마시게 추상화가 풍경화를 시비하지 않고클래식이 트로트를 경시하지 않고서로 제 갈 길을 묵묵히 걷는데굳이 죄다 알려 들지 말고아는 만큼만 느끼면 될 일 우리라고 부르지만서로를 전부 알 수 없듯무릇 세상사가 그러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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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병
꽃병 속의 물은늘 평온이다 네가 얼면 병은 깨진다내 가슴처럼 내가 끊어도 꽃은 시든다네 마음처럼 차가워져도뜨거워져도사라지는 꽃과 꽃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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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풍경
불빛들 내려꽂혀 성긴 울타리를 치면작은 배 하나 울타리를 길게 털고 간다호수에 빠진 밤이 파동으로 떨고까만 눈동자 어둠 속에 가물거리면유혹하는 슬픔이 저만치서 다가오고어제의 푸른 맹세를 잊은 맥류만 쌓인 수면나더러 왜 이곳을 찾느냐고 물으면황홀하게 명멸하는 불빛에 취해서가 아니라보는 이 없어도 소란의 도시가 밤새 떨어뜨린환락의 불빛들을 말끔히 걷어내고고요한 침묵으로 새벽을 기다리는터질 듯 불거진 손등의검고 푸른 박동이 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