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갈고 세우며 세상을 그린다
지우개의 달콤한 유혹도 외면한 채
한평생 품어온 심지 꺾지 못할 통나무
네 결코 칼날을 두려워 말라
살점이 쓱싹 베어지는 아픔 없이는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예지를 벼릴 수 없으니
네 뼈를 깎지 않고서야
어찌 외진 곳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더냐
두려우면 볼펜이나 만년필이 되라
그리하여 저항할 수 없는 중력에 순응하며
부르는 대로 받아쓰고
채운 먹물을 호사스레 뿌릴 일이거니
더는 굽힐 수 없는 까닭에
욕조에 머리통이 잠기거나 혹은
밀실 철봉에 거꾸로 달려
허리 꺾여 혼절해도 굴하지 않을
여섯 번씩 모난 너의 이름 H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