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산청호국원 안장담당 이병문
국립산청호국원 안장담당 이병문

(산청=경남뉴스투데이)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 전에서 우리나라와 맞붙은 나라가 터키인데 경기가 끝난 후 양국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운동장을 돌며 관중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런 장면의 뿌리에는 6·25전쟁 당시 터키가 참전국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도움을 준 형제의 나라였다. 6·25전쟁 당시 UN참전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21,212명의 인원을 파병하였다.

파병 당시 터키는 지리적으로 소련 위성국과 국경을 맞닿아 있어 항상 소련의 관습과 핍박을 받고 있어서 서방국가의 외교적 관계가 절실하였는데 미국의 군사 지원 요청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로 자국의 실익과 세계 평화 수호를 위해 1950년 7월 18일 국회 긴급 소집으로 1개 여단을 파병 하기로 한다.

그해 가을 한반도에 도착하여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오스만 제국의 전술과 서방 군사작전과 맞지 않아 고전을 했지만 전투가 진행될수록 적과 대치에 후퇴하지 않고 백병전을 불사했다. 오스만 제국의 후예답게 백병전에서 승전했다.

이렇게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고 백병전을 불사하는 터키군은 적들에게 가장 무서운 부대였다. 이를 증명하듯 1951년 미 대통령 부대표창, 1952년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는 가장 우수한 부대였다. 반면 희생자도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았다.

전사와 사망자는 900명, 부상자 1,155명, 포로 244명이다.

터키는 세계평화수호 정신과 강인한 전투력을 인정받아 1952년 NO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가입 함으로써 기나긴 소련의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정전협정 후 1954년 본대가 철수하고 1966년까지 휴전선 경비업무를 하였고 1971년 전체 철수을 했다. 전쟁은 정전상태가 되었지만 터키군은 끝까지 한반도의 평화를지켰다.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날을 되새기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더 나아가 세계평화수호에 헌신한 형제의 나라, 오스만 제국의 후예 터키 참전용사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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